- 한양도성박물관, 서울 종로구
변화의시작
19세기 중후반부터 시작된 서구 열강의 개항 요구 속에서 조선 정부는 해안과 도성 경비를 강화하는 한편, 경복궁과 흥인지문을 새로 짓는 등 도성을 재정비 하고 왕권의 위상을 높이려 했다. 그러나 1882년 임오군란을 계기로 도성 안에 외국 군대가 주문하면서 도성의 군사적 의미는 크게 손상되었다. 또 정부의 군제 개혁으로 인해 삼군문이 해체됨으로써 일상적인 도성 관리도 허술해졌다. 도성 안은 1882년 중국 상인들에게, 1885년부터는 통상조약을 체결한 모든 나라의 상인들에게 개방되었다. 남산 기슭에서 개천에 이르는 구간은 일본인과 청국인의 거류지가 되었고, 돈의문에서 소의문에 이르는 성벽 옆 정동 일대는 서양인의 거류지가 되었다. 도성 안에 외국 공관과 종교시설, 교육시설 들이 속속 들어섰는데, 이들 중에는 성벽 바로 옆에 지은 것이 많았다.
1. 출퇴근, 산책, 운동, 관람, 여행을 떠난다.
2. 수어로 설명하면 좋을 것같은 안내문이 있는지 살핀다.
3. 스마트폰으로 안내문을 촬영한다.
4. 개인 SNS에 올린다. 해시태그 #QR수어 #큐알수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또는 컨택센터, 이메일 hello@signconnect.me
2. 수어로 설명하면 좋을 것같은 안내문이 있는지 살핀다.
3. 스마트폰으로 안내문을 촬영한다.
4. 개인 SNS에 올린다. 해시태그 #QR수어 #큐알수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또는 컨택센터, 이메일 hello@signconnect.me
댓글을 달려면 로그인해야 합니다.